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중요한 결정을 '무작위'에 맡겨 왔다. 때로는 신의 뜻을 묻기 위해, 때로는 인간의 편향을 배제하기 위해. 제비뽑기의 역사는 곧 '공정함을 향한 인류의 오랜 고민'이다.
가장 놀라운 사례는 고대 아테네다. 민주주의의 발상지로 알려진 아테네는 상당수의 공직자를 선거가 아니라 제비뽑기(추첨)로 뽑았다. '클레로테리온'이라는 추첨 기계로 시민 중에서 무작위로 배심원과 관리를 선발했는데, 이는 돈이나 인맥이 아니라 우연이 권력을 나눠야 부패를 막는다는 믿음에서 나온 제도였다. 추첨은 그 자체로 정치 철학이었던 셈이다.
종교에서도 제비뽑기는 흔했다. 여러 문화권에서 사람들은 인간이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를 제비에 맡기고, 그 결과를 '신의 응답'으로 받아들였다. 결정의 책임을 초월적 존재에게 넘김으로써 공동체의 갈등을 줄이는 지혜였다. 일본 신사의 오미쿠지(おみくじ)처럼, 운세를 제비로 뽑는 풍습은 지금도 이어진다.
수천 년을 관통하는 이유는 하나다. 제비뽑기에는 사람의 의도가 끼어들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도 조작할 수 없고, 모두에게 같은 확률이 주어진다. 그래서 결과가 나빠도 원망할 대상이 없고, 공동체는 결정에 승복한다. 오늘 우리가 회식 자리에서 사다리를 타는 것도, 아테네 시민이 클레로테리온 앞에 선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 공정하고, 뒷말이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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